94학번 우정환선배님 인터뷰


지난 1학기 '정보기술과 사회'수업의 멘토이자 페이스북 친구인 94학번 우정환 선배님을 인터뷰했습니다. 저는 수업의 멘토님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 과 선배님이셨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인터뷰요청을 드렸고 인터뷰를 위해 홍대로 갔습니다. 사무실에서 나오신 선배님께서 저를 반갑게 맞아주셨어요. 저희는 바로 식사를 하러 자리를 옮겼습니다

대학시절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선배님께서는
 “내가 입학했던 94년 3월 4일이었지. 그 당시에 완공된 사회대(현 평생교육원)건물이 설립기념 커팅식 같은 걸 했었어. 그런데 선배들이 하는 말이 분명 겨울 방학 하기 전에는 없었던 건물이라는거야. 2달 만에 후딱 지어진거야. 그래서 부실공사다 뭐다 말이 엄청 많았어. 그런데 나는 입학하고 다음날 학교에 가자마자 선배들이 주는 피켓을 받고 멀뚱멀뚱 앉아서 시키라는 대로 건물 문을 막고 앞에 앉아서 데모를 했지. 더 웃긴 건 그 건물이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다는 거야. 마친 커팅식을 하고 학교 총장님이 계셨던 터라 그 건물 안에 총장님을 가둬놓고 문을 막고 데모를 했어. 그런데 우리과 구호가 뭐니. '선봉'이잖아. 사회대의 선봉인 우리가 항상 데모 같은걸 할때마다 선봉에 서야했어. 그래서 반나절동안 건물 앞에 죽치고 데모만 했었지.
그리고 다른 에피소드는 우리 과에 '역사문제연구회'라는 소모임이 있었는데,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자료를 읽고 서로 의견을 토론하는 거였는데 아주 격렬한 토론이었지. 일주일에 한번씩 모이면 세 네시간을 토론을 했어. 동기끼리 정말 싸울 것처럼 토론했지. 그런데 항상 그 끝은 술이었어. 그런데 지금 사회에 나와서 생각해보니까 그 모임이 굉장히 도움이 되고있단다. 우리 과에 은근히 소모임이 많았어. '달과 여섯 줄'이라고 달과 6펜스를 패러디했는데, 기타 소모임이었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서로 기타 연주도하고 공부도 했어. 이것도 역시 끝은 술이었어. 그 때는 학교 앞에 술집도 별로 없고 그래서 노상을 많이 했지. 본관 앞 잔디밭이 주 장소였고 아니면 학교 앞 콘크리트길에 불피워놓고 많이 마셨었지.
아, 그리고 내가 1학년 때 학교에서 연예인을 봤는데 본관 잔디밭에서 자다가 수업을 가려고 벌떡 일어났더니 드라마촬영을 하고 있는 거야. 이영애랑 정혜영이랑 여주인공인 드라마였는데 그때 막 이영애한테 가서 싸인받았지 그리고 언정대로 들어가는 길 거기서 교수님이랑 이야기하고 있는 이병헌을 봤어. 그래서 다짜고짜 가서 악수를 했어. 그리고 인문대(지금의 국제문화대) 문화인류학과에 송윤아가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우리 과 친구들이랑 몇 명이서 문화인류학과 교양수업을 신청했어. 딱 첫 수업에 들어갔는데 송윤아가 온거지. 그때 교수님이 수업 끝나고 싸인도 받지 말고 사진도 찍지 말고 조용히 해달라고 안 그러면 송윤아씨가 수업에 참석을 못한다고 우리에게 부탁했어. 그런데 그게 말이 통하겠니. 수업끝나자 마자 우르르르 몰려가서 결국 다음 수업부터는 안 오더라.. 그렇게 쭉 안 오다가 졸업식 날 봤어. 졸업식 날 또 우리는 우르르 몰려가서 같이 졸업식 단체사진 맨 앞줄에서 송윤아랑 나란히 사진을 찍었지. 그 사진이 아마 내 동기한테 있을 텐데.. 아까워....
여기까지가 군 입대 전이라면, 제대 후에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 내가 복학을 우리 과 동기 3명이랑 '규찰대(학생방범단)'이라는 걸 했어. 밤에 외부인 출입이나 술 먹고 뻗은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일종의 아르바이트 같은거지. 그때 내가 여러 명 잡아냈지. 특히 학교 안에서 애정 행각하는 사람들 엄청나게 잡았어. 그런데 점점 재미가 없는 거야. 이 일이 모두 모여서 출석체크를 하고 각자 장소로 흩어지는 건데 그때 지금의 셔틀콕 뒤쪽에 있는 쥐구멍으로 나가서 친구 자취방에서 TV보고 놀다가 복귀할 시간이 되면 슬쩍 복귀하곤했어. 규찰대 옷이 경찰관 야간 업무 때 입는 옷처럼 어두운데서 반짝반짝하는 옷이었는데 그 옷을 입고 밖에 나가면 딱 걸리니까 그 옷을 학술관 건물쪽에 슬쩍 벗어놓고 다른 친구들이랑 나갔다가 돌아와서 입으려고 하는데 그때 딱 수위아저씨가 손전등을 들고 "누구야!"하고 소리치시는 거야 그래서 너무 놀라서 학술관 창문을 열고 건물 안에 들어가서 창문 밑에 숨어있었어. 별수있 나 딱 걸려서 새벽2시까지 훈계를 받았지.
또 가을 축제 가요제 '별망가요제'였나? 그게 민주광장에 무대를 설치해서 열렸는데 예선통과해서 결국 대상 탔지. 그 때 상품이 오디오였어. 그런데 그 시간이 딱 규찰대 활동하는 시간이어서 그 번쩍이는 규찰대 옷을 입고 김경호 노래를 불렀었지. 복학 후에는 98년 2학기부터 99년 1학기까지 우리 과 학생회장을 할 때였는데 밥을 먹으러 사회대에서 학생식당까지 걸어갈 때면 어느 샌가 내 뒤로 후배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따라왔어. 그 당시 한달 용돈으로 30~40만원정도면 엄청 많이 쓴거지. 그게 다 후배들 밥값이었다고 생각하면 돼.”
라며,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하고 계신 일과 그 일에 관심 있어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 여쭤보았습니다.
선배님께서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웹 에이전시'야. 쉽게 이야기하면 이 전에 인터뷰했던 김원민이 오프라인 기반의 일이라면, 나는 온라인 기반이지. 웹 사이트 구축 & 컨설팅을 하는 건데 삼성화재 다이렉트 사이트 디렉팅, 삼성화재 대표사이트 PM, SK텔레콤 TTL, LG전자 엑스캔버스, 교모문고 모바일 사이트 등등 다양한 분야의 일들을 의뢰받아서 하고 있지.
 이 업계에 있다 보니 옛날에는 오해를 많이 받았어. "무슨 일 하세요?" 물어봐서 "홈페이지 만들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면 "저희 홈페이지도 만들어주세요~ 백 만원이면 되나?" 이러는거야 사실 이런 사이트를 구축할 때는 단위가 억 단위 이상으로 움직이거든.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 마땅히 설명하기가 힘든 게 사실이야. 예전에는 메이저 웹 에이전시에 있다가 지금 일하는 곳으로 왔는데 처음 왔을때보다 규모가 배로 커져서 굉장히 뿌듯해. 아, 이 업계에 우리 과 출신이 꽤 있어. 은근히 온라인업계에서 일하는 우리 과 출신이 많단다.
사회학적 지식이라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 학교 다닐 때 했던 토론 반, 학생회장, 데모, 노래 부르기 같은 것들이 기획자로서 클라이언트들에게 우리의 PT를 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 동기, 선후배들을 설득하려고 했던 학생회장의 경험이 설득에 대한 스킬을 키워 준 것 같아. 웹 기획이라는 일이 다방면의 일인데 나는 이 직업에 대해 후배들에게 이야기 할 때 '탤런트나 영화배우'와 똑같다고 이야기해. 하나의 역할에 빠져들었다가 그 일이 끝나면 빠져나오고 또 다시 다른 역할에 몰두하고.. 어떤 분야의 일이 들어올지 모르니 말이야. 3~4개월 동안은 그 일에만 몰입해야하지. 그러다 보니까 또 다른 상식들이 많이 늘어나. 세대를 아우르는 이해도 생기지. 이 사이트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 회사가 제공하는 정보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니까. 이 일도 TV CF만드는 것과 똑같은 고민과 아이디어를 생각해야하지.
'다이나믹한 삶을 경험하고 싶다면 도전하라.'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어. 안정된 생활을 추구한다면 이 업계는 어울리지 않아. 언제 어떻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말이야. 잠시도 여유롭게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어. 그렇지만 자유로운 분위기와 다방면의 감각이 깨어난다는 것, 여기저기 호기심도 늘어난다는 점, 같은 나이여도 생각이 젊은 직업이 바로 웹 에이전시지. 몸은 힘들지만 내가 구축하고 설계한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보람도 느끼고 재미있는 직업이야.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순수학문이고 사실 이곳을 나와서 무슨 일을 할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이 많았어. 옛날 사회학과라고 하면 학생 때는 데모, 노동 이런 것들을 하다가 사회에 나와서 그나마 신문사나 리서치회사에 들어가는 제약적인 모습이 많이 보였지. 하지만 내 동기들만 해도 직업군이 굉장히 다양해. 경찰 경장, 제약회사, 해외 바이어 통역, 보석감정사, 삼성SDS 등 사회학이라는 것이 하나의 뚜렷한 길이 없다는 게 강점이 될 수 있어. 어느 분야에서든지 응용이 무궁무진하고 그만큼 직종이 다양해질 수 있어!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에 대해서 선배님께서는
“ '사회통계'수업이 아마 그 때는 윤영민 교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을거야. 내가 수학도 싫어하고 상식이 풍부해졌으면 좋겠다 싶어서 사회학과에 온 거였는데 첫날 딱 가니까 이건 그냥 수학인거야. 그때 교수님께서 "이 수업에 흥미가 없는 사람은 안 들어와도 좋다."라고 하셨지. 그래서 진짜 몇 번 안 들어갔는데 성적이 D였어..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하고 4학년 1학기때 재수강을 했지. 성적은 A+을 받았어. 처음 D를 맞을 때 그 수업이 SAS라는 통계프로그램을 썼는데 너무 어려운거야 그래서 결국 그렇게 된 거지. 그런데 내가 3학년 때 중앙동 YMCA에서 저녁시간에 아줌마, 아저씨들한테 20만원씩 받고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같은 것들을 가르쳤거든? 복학하고 사회통계를 재수강하니까 프로그램이 SAS에서 SPSS로 바뀐거야! SPSS가 엑셀처럼 쉬워서 배우기도 좋아서 흥미도 생기고 성적도 잘 받게  된거지. 사회통계가 사회에 나와서도 꾸준히 쓰여. 정말 유용한 수업이지. 또 윤영민 교수님 수업이었는데 논문한권을 읽고 A4용지 한 장으로 요약해오라는 것도 있었어. 그건 점수를 아주 잘 받았지.
김명수 교수님의 수업 중에 '일탈'이라는 주제를 배운 적이 있어. 말 그대로 '일탈사회학'이라고 불렀는데, 영화 '게임의 법칙'을 보고 '일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글 쓰는 과제였어. 사실 나는 그때까지 사회학이라는게 이론적인 것만 있고 우리 실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학문으로 생각했었어. 하지만 이 수업을 통해서 실생활에서도 이용되고 우리 사회를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 과에 흥미를 갖게 되는 계기가 됐지.”라며 말씀해주었습니다.

선배님께 사회인의 밤의 의미에 대해 여쭤봤습니다.
 “나 때만 해도 사회인의 밤을 할 때는 윗 기수 선배들도 별로 없을 때고, 그나마도 반 정도는 학교를 같이 다니고 있었지. 숫자도 적어서 연락에 큰 어려움은 없었어. 그 때는 후배들이 선배들을 위해 보여준다는 개념으로 공연기획을 많이 하고 그랬어.
그런데 아쉬운 게 '동문회'가 없다는 것이었어. 지금 일을 하다 보면 다른 학교에서 동문회사이트같은 것들이 의뢰가 들어와. 그 일을 맡아서 하다보면 '동문회도 하나의 소셜 네트워크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돼. 이전부터 있었으면 동문회라는 울타리 안의 한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가질 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지. 내가 지난 1학기 '정보기술과 사회'수업의 멘토로 참여는 했지만. 우리 과 후배들에게 선뜻 선배라고 소개를 할 수 없었던 사실도 어떻게 보면 이런 네트워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울타리 안에서의 정보교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학연이라는 것이 구시대적인 생각이라지만 사회에 나왔을 때 자기만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있고, 그 안의 구성원이라는 의식이 정말 필요한 것 같아. 큰 일이나 사회적으로 연결된 일이 있을 때 그런 네트워크가 큰 도움이 되지. 동문회의 핵심은 '서로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다른 선,후배,동기가 사회 안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는지라도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그런데 그런 체계가 지금까지 없다는게 아쉬워서 이번 사회인의 밤을 계기로 이런 체계가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아. ”라며 말씀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한마디 해주었습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을 빨리 찾아라!"
 직장생활을 11년째 하고 있고 어느 정도 위치에서 후배사원들의 면접을 보다보면 나름대로 보이는 것이 있어. 같은 조건이지만 그 중 굉장히 다양한 일을 해온 사람을 보면 좋은 점도 있지 여러 가지 일들을 접하고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져. 하지만 그 사람들을 보면 졸업 후 명확한 자기의 뜻 없이 우연히 들어오는 일에 여기저기 발을 담그고 '이렇게 여러 가지 하다보면 나랑 맞는 일을 찾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야. 목표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해. 나는 그나마 그런 방황을 짧게 한편이었어. 그나마도 돌이켜보면 1,2학년때는 정말 많이 놀아서 좋지 않은 성적을 그나마 3,4학년때 바짝 공부해서 졸업했어. 사회에 나와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잘하는 일인지, 좋아서 하는 일인지도 모르고 스스로의 비전을 찾지 못한 채 살고 있었던거야. 내가 할 수 있고 잘 할수 있는 일을 미리 찾아놨다면 지금보다 더 잘되지 않았을까? 물론 대기업을 가는 것도 좋아. 그렇지만 내가 거기서 무엇을 할 건지 목표를 분명히 해두는 게 중요해. 스펙도 좋지만 그래도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결정하고 사회에 말을 딛는 사람이 더 잘 살수 있다는 것을 분명한 사실이야.”라며 조언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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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학번 권운혁 선배님을 만나다!

11월 8일 학교앞 카페에서 87학번 권운혁 선배님을 만났습니다^^

선배님께 대학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지 물어보았습니다.

“에피소드는 참 많은데, 우리 과를 가장 기억하고 동기들을 가장 지금도 생각하면서 기분 좋게 느껴졌던 게, 우리 때는 등록금부터 시작해서 학원저자투쟁을 했었어. 눈 오는 날 여기가 포장이 안돼서 장화를 신고 첫 등교를 했었어. 학원저자투쟁이 시작됐었어. 과대를 뽑고 첫 번째 총회 안건이 수업거부 겸 총파업이었어. 혈서도 쓰고 그랬었지. 내용도 모르고 막 했었는데 그때 기억나는 것이 만난 지 몇 개월 안됐었는데 다른 과들에 비해 우리 과는 참여율이 높았어. 그리고 26명이 여자였고 19명이 남자였는데 여자 동기들이 철야 농성하는 남학생들을 위해 도시락을 싸다준 경우도 있었어. 본관점거 농성을 하고 있었는데 경상대 교수님이 올라오셔서 무역학과, 경제과 애들을 우산으로 때리고 부모님 욕을 하면서 이렇게 가르쳤냐고 야단을 치셨어. 교수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깐 학생들이 얼마나 답답하겠어. 우리 과 전 모 교수님께서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주시면서 잘 먹고 하라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 그리고 88년도 대동제 때 주점한다고 도서관 앞에 주점을 차려놨는데 냅킨에다 담뱃불을 붙이고 버리는 바람에 텐트들이 6개나 탔어. 아마 88학번 애들은 그 기억이 새록새록 할 거야. 워낙 우리 과가 단결이 잘 됐었어. 우리 동기들이 예뻤어. 그러다 보니깐 타과에서 찝쩍거리는 애들이 많았지. 절대 그걸 또 그냥 넘기지 않았어. 과 패싸움도 하고 그랬어. 그리고 우리 때는 학생증 하나면 다 해결이 됐었어. 학생증을 맡기고 술을 마셨었거든. 술집에서도 학생들이 가지고 올 거라고 생각했었고 학생들도 가능하면 가져다주려고 노력했었지. 근데 안 갖다 주는 몇몇과가 있었는데 그중에 한 과가 우리과야. 그리고 그 때 당시에는 사회학도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했어. 예를 들면 총학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면 사회대에 물어보고 했을 정도였어. 총학생회에서 집회를 하면 500명이 모이잖아. 그중에 사회대가 350명이야. 그럼 사회대는 4학년 빼고는 거의 다 출석했다고 할 수 있지.”

지금 하시는 일과 그 일에 관심이 있는 후배들에게 해부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 물어보았는데요.

선배님께서는 “우리가 처음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가질 때는 취약 계층이라고 해서 자본주의 경쟁에서 탈락된 분들에게 국가가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기초생활 보장을 해야 한다고 봤던 것이고 노동능력이 있으신 분들, 이런 분들에게는 구체적으로 그것으로 경제적인 완전자립보다는 노동의 권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 생산자로서 부분, 이런 보람을 느끼게 해야 한다. 이런 보람들이 반인간적이거나 반사회적이면 안 되잖아. 가장 크게 보람으로 올 수 있는 것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자는 거야. 2001년~2002년 그때 당시만 해도 다양한 방식이 있었어. 학력 없고 자본 없고 노동능력마저 100%아니신 분들과 할 수 있는 사업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 우리는 재활용 이라는 것을 선택했지. 기업을 만들어서 공동체 활동을 해보자 했던 것이야. 사회적 가치라는 것이 화폐가치로 환원이 안 되니까 누군가의 지지도 없고 우리끼리 하다 보니까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거야. 과감하게 국가나 사회에 청구할 수 있게끔 2차 3차의 비용으로 얼마나 줄이는 것이다, 이게 결국은 국가가 지불하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이게 우리의 생산이다, 이것들을 설득시켜나가는 작업을 해보자 라는 측면에서 중점적인 고민을 했었지. 사회적 기업이 지금처럼 제도나 틀에 맞추는 게 아니고 매 과정이 사회적이야 한다고 생각해. output에 연연하지 많고 얼마나 많은 사회적 동의를 만들어 내는가가 중요해. 사회적 기업이 하는 일은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것이야.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그 가치에 동의하고 같이 움직여야 사회적 기업이라고 할 수 있지.

일단 특별한 조건은 없어. 사회적 기업이 뭔지 마음으로 받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자기 스스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해. 사회적 기업이 무엇인지, 왜 이것이 지금 트랜드 인지 이런 부분에서 충분히 생각해 봐야해.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불행하다면 사회적 기업이라고 할 수 없어. 사회적 기업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첫 번째 조건이라 생각해.”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으신지 여쭤보았습니다.

” ‘여성 사회학’을 가르쳐 주셨던 교수님이 기억에 남아. 그때 당시 총학생회의 공략이 조국 통일이었어. 전국대학생재표자협의회에서 대표로 8월 15일 임수경 대표가 북한으로 간 거야. 그때 생각나는 것이 여성학 교수님께서 임수경의 방북이 일탈이냐 아니냐, 그런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이나. ‘통계학’을 가르쳐 주신 교수님도 기억나. 수학과 교수님이셨는데 희한하게 내가 학년대표였는데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그 시간에 총회, MT 등 학과행사가 맨날 잡혀서 6번을 빠졌었어. 한 날 교수님이 “수업이 맘에 안드는거냐, 내가 만만하냐?”라고 말씀 하신 적도 있어. 우리 때는 영어가 강독, 랩실에서 하는 거, 외국인 회화 세 개가 있었어. 세 개 중에 하나라도 F가 되면 다 F였어. 한참 반미 투쟁이 심하던 시기였어. 감정이 지배했던 때였지. 우리가 미국 놈한테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용납이 안됐던 것이지. 그래서 교수님이 들어왔을 때 ‘yankee go’ 그랬지. 교수가 기분이 나빴었나 봐, ‘go out’ 그러더라고. 그리고 나서는 재수강했는데 또 외국인교수가 그 교수가 걸린 거야. 또 F처리를 받았지. 4학년 2학기 졸업을 해야겠는데 또F인거야. 전성우 교수님의 도움으로 영어 점수를 통과해서 졸업을 했지.”

사회인의 밤에 어떤 행사가 되면 좋을지 물어보았는데요.

“그동안 어떤 컨셉으로 진행돼왔는지 모르겠지만 가면 선후배가 만날 수 있는 자리였으면 좋겠어. 사실 가봐야 몇몇 없어. 평소에 소통을 안 하다가 만나니깐 어색한 자리가 될 수도 있어. 학교에 있는 후배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사회인의 밤이란 행사가 학과를 졸업한 선후배들이 모이는 자리야. 근데 모이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어. 많이 모이게끔 하는 노력이 필요해. 그리고 교수님들의 협조를 부탁하는 것도 좋아.”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당부해주고 싶은 한마디를 해주셨습니다.

“기회가 될 때 열심히 살고 자기 분야에서 맡은 일에 변명하지 않을 정도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지금까지 내가 맡은 일에 후회를 해본 적이 없어. 아쉬운 적은 있었지만. 사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면 가정을 지켜야한다는 핑계로 여러 가지를 타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아직은 타협하기 보다는 즐겁고 행복한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더 많은 열정을 투자하는 후배들이 됐으면 좋겠어.”

선배님의 목소리가 직접 듣고싶으시다면?^___^☞클릭클릭!

“쫄지마!”를 외치시는 이정석 선배님!

2011년 11월 9일, 강남역의 한 고깃집에서 99학번 이정석 선배님을 만났습니다. 졸업하신 선배님은 처음 뵙는 거라 많이 긴장하고 갔는데, 쾌활한 성격을 지니신 선배님 덕분에 좋은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차가 막히는 탓에 약속시간을 약간 넘겼는데, 여유롭게 웃어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셨어요^0^

고깃집에서 저녁 식사 후,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선배님께서는 대학 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친구들과 졸업여행을 갔던 것이라고 하셨어요.

 

“졸업한지 오래 되어서 기억은 잘 안 나. 그래도 하나 꼽자면… 여름에 친구 12명이랑 대명비발디로 졸업여행을 갔었어. 가서 놀다가 한 친구가 ‘저 쪽 슈퍼에 가서 여자들을 꼬셔오겠다!’ 라고 하는 거야. 근데 신기하게도 1시간 후에 정말 여자 12명과 같이 나타났어. 그 날 정말 재밌게 놀고 나서, 서울에 올라와서도 함께 놀았지.”

 

선배님은 저희에게 현실적인 조언도 많이 해주셨는데요.

 

“방학만 되면 대학생들이 자격증 따러 다니고 영어 공부하고 그러는데, 그것도 좋지만 일단 그것보단 생생한 많은 경험들을 해보는 것이 좋아. 많은 경험을 하면 자기발전에 도움이 되고, 삶의 활력소도 될 수 있거든. 그리고 어떤 분야에 대해 깊이 배워도 어차피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되기 때문에 한 가지에 집중하기보단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해보는 것이 좋아.”

 

기억에 남는 수업은 ‘사회조사방법’이라고 하셨습니다.

 

“기억에 남는 수업? 윤영민 교수님의 ‘사회조사방법’이 가장 기억에 남네. 지금 하는 일과 관련이 있는 수업이었거든.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모바일로 구현하는 걸 기획하는 일인데, 일을 할 때 사회조사방법 시간에 배운 게 도움이 많이 돼. 아, 그리고 수업이 많이 빡세기도 했고!”

 

선배님께 사회인의 밤이 어떤 행사가 되면 좋겠는지도 여쭤보았어요!

 

“그 시기에 딱 연락한다고 졸업생들이 찾아오는 건 아니야. 진정한 사회인의 밤이 되려면 그 이전부터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함께 하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친해질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공감대 형성도 중요하고 말이야.”

 

선배님은 웹 기획 및 컨설팅 전문 업체에서 근무하고 계신데요~ 전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일은 아니지만, 사회 현상 전반을 다루는 정보사회학과 수업이 일하시는데 도움이 됐다고 하셨습니다.

 

인터뷰 내내 강조하시고, 마지막까지 강조하셨던 선배님의 말씀이 있는데요.

 

“쫄지마, $%#$%!!”

후배 여러분! 언제든 찾아주세요^^

안산에서 지내고 계시다는 김성균 선배님(00학번)의 연락을 받고 토요일 오후 2시에 학교 앞 카페에서 인터뷰를 가졌어요:)

저희가 진행한 문자이벤트의 첫번째 당첨되셨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둔 와인도 선물로 드렸습니다. 기쁘게 받아주셔서 저희도 뿌듯했어요^^ 선배님의 학번으로 봐서 ‘아 30대 초반이시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오시는 모습 보고 엄청 동안이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김성균 선배님께서는 한우리 활동을 열심히 하셨다고 해요.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 05년도에 과 회장도 했었죠. 다 기억에 남죠. 근데 사회인의 밤을 진행하는 데, 선배님들이 많이 안 오셔서 성과가 좋지 않아서 실망도 많이 했었죠. 회장 기간도 막바지가 되면서 부담감과 책임감이 배가 되었었던 것 같아요. 그 이유에는 아무래도 동문회가 형성되지 않아서 더 힘든 점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선배님께선 현재 유통업에 종사하고 계시는데, 동아리 학생회 등 단체활동을 해보는게 도움이 된다고 하셨어요.

“저는 우연히 첫 이력서를 넣고, 첫 면접을 봐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머리를 쓰기도 하지만, 몸으로 움직이기도 하는 일도 있기때문에 아무래도 활동적인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대세상 중요한 토익, 학점 이러한 수치상의 스펙들보다도, 단체생활을 많이 해보지 않는 친구들은 회사에 들어오게 되면 많이 티가 나는 편이에요. 이런 면에서, 동아리나, 학생회 활동이 취업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많이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죠. ”
역시 학창시절 경험이 언젠가는 다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저희에게도 다양한 경험을 쌓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답니다.
“저는 원없이 대학생활을 즐겼고,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양한 경험들을 해보는 것이 대학생활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경험이 쌓이고 생각들이 생기면서, 어디에서 보내든 그런 날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으로는 ‘사회조사방법’을 꼽으셨답니다. 이론으로 실제 결과물을 만들어낸 기억이 가장 남는다고 하셨어요.

“교수님은 당연히 다 기억에 남죠. 한 수업만 찝어서 얘기를 드리자면, 윤영민 교수님의 사회조사방법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수업 때 활동하던 그룹 활동을 학술제에서 발표하기도 했고요. 원곡동에 가서 중국 사람이 운영하는 만두 가게에도 가고, 허름한 다방에서 차를 마시기도 했어요. 그 연구한 결과를 SPSS 프로그램을 돌려서 결과를 얻었죠.”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꼭 덧붙이셨어요.

“선배들은 항상 후배들을 생각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하니까 궁금한게 있으면 물어보고 지내면서 했으면 좋겠어요.”

‘띠용 선배’를 아시나요?

보슬보슬 비가 내리는 8월의 저녁, ‘띠용’이라는 독특한 별명을 가진 이진영(98학번) 선배님을 만났어요. 선배님의 친근한 인상은 보는 사람마저 편해질 것만 같고 실제로 선배님과 만나는 동안 편안하게 인터뷰 할 수 있었답니다.^^

선배님은 대학시절 중 다양한 단체생활을 경험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어요.
“제천으로 처음 농활을 갔던 기억이나. 새로운 곳에서 그 지역주민분들과 함께 소통하고 낮엔 일하고 밤엔 술 마시곤 했어. 그중 에서도 한 형님이 나를 너무 좋아해주셔서 일주일간 그 집에 일을 가기도 했어. 한우리 공연 또한 잊을 수 없지. 학교 다니면서 총 4번의 공연을 했는데 그 중에서도 처음 새내기때 밤새 연습해서 공연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 그때나 지금이나 다시 생각해봐도 남들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공연이였었지. 마지막으로 언정대 학생회 생활도 기억에 남아. 학생회장 이였거든. 샤바(정경훈(03학번) 선배님)가 얘기 안 해줬어? 내가 (그야말로) 레전드 전설 이였는데^^” 선배님은 예전 대학시절 추억에 잠기셨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어요. 그리고 ‘띠용’이라는 선배님의 별명도 동아리에서 친한 형이 술을 먹고 혀짧은 소리로 ‘띠용아!’ 라고 불러서 그 이후로 띠용이 되었다는 별명의 탄생비화도 들을 수 있었답니다.

선배님께서는 사회학과랑 관련이 없는 소재유통 업계, 즉 원단을 공급하고 출력하는 회사에 종사하고 계세요. 우리 과(정보사회학과)와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사회학에서 배운 소통, 토론수업들은 영업 쪽에서 도움이 된다고 하셨어요.

“가장 생각나는 교수님은 전성우 교수님이지. 수업의 재미는 상당히(;;) 떨어질 거야. 마르크스, 베버, 콩트 같은 전통사회학이라 난해하고 어려웠거든. 솔직히 강의를 열심히 듣는 학생은 아니었어. 그렇지만 교수님의 사회/도시 공동체에 대한 사회학적 가치관이 정말 좋았어!! 수업이 끝나면 찾아오는 뒤풀이도 빼놓을 수 없었지. 삼겹살에 소주로 함께 어우러져서 수업외의 다른 이야기들도 나누고 마지막에 딱 쏘시고 가시는 멋진 모습 아직도 기억나. 수업 중 토론시간에는 학생들이 준비한 토론을 들으면서 평가도하시고 답변에 대해 생각하시고 이야기하시는 모습을 보면 전형적인 학자의 모습이라고 할까? 또 내가 학생회장이라서, 불가피하게 수업을 빠져야 할 때가 있었는데, ‘수업도 좋지만 당연히 학생회장으로 할 일을 해야지!’ 하시면서 수업을 빼주셨던 일도 있었지.

김명수 교수님도 너무 좋은 교수님이셔. 내가 학생 때 봐온 교수님은 단 한 번도 화 낸 모습을 본 적 없는 신사 같은 분이야. 교수님이 그 당시 학과장이셨는데, 우리MT에 오셔서 ‘말이 껍질을 깨봐라. 도전해봐라. 취업 같은 것들은 아직 스무 살이 할 고민이 아니다. 많이 생각하고 경험하고 틀을 깨고 삶을 고민해 보아라.’ 라는 주옥같은 말도 해주시고 진보적이고 개혁적이시면서 학생들 입장에 서주시는 분이셔. 예전에 신방과 통폐합 문제가 거론 된 적이 있었어. 이미 언론정보대학 교수협의회에서는 통폐합하기로 결정 된 상황 이였지. 신방과가 없어질 상황에 우리는 학생 대표로 찾아가서 교수님께 이 사항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명했어. 서명운동도 받고, 언정대 앞에서 투쟁도 했었지. 그랬더니 우리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시고 ‘알겠다, 없던 걸로 하자. 대신 발전 협의회에 학생회장이 들어와서 발전 방향을 연구해라, 하지만 나중에 가서도 이 논리가 맞다고 생각되면 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다’ 라고 하셨어. 학교가 경쟁력 있게 발전하려면 안산과 행당, 두 캠퍼스에 두 신방과가 존재한다는 것은 불필요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시고 받아주신 교수님은 정말 대단했지. 그래서 지금의 신방과가 존재 하는 거야.“
자칫 지금의 신방과가 없어 질 뻔 했던 사연을 들으면서 속으로 깜짝 놀라고 김명수 교수님과 이진영선배님을 비롯한 선배님들의 노고에 감사드렸어요.

선배님께선 이번 사회인의 밤에 대해 동문들 간의 공감대 분위기 형성을 원하셨어요.
“재학생들은 모르겠는데, 다른 졸업생들은 상당히 뻘쭘해. 이전에 사회학과 동문회가 있었는데 졸업하고 1,2년 이상 되고 직장 갖고 여자들은 아이 낳고 살림을 하다 보니, 안산까지 내려오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 또 딸랑 전화 한통으로 오길 바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할까, 같은 동기들도 연락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아는 후배나 사람이 있어서 오라고 부축이면 못이기는 척 가기라고 하겠지만, 아는 사람이 없으면 안 가게 되는 게 민망한 실정이야. 삼십대 넘은 나 같은 사람이랑 파릇파릇한 이십대 후배들이랑 이야기해도 공감대가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교수님들도 잠깐 오셨다가 가시고. 그래서 말인데, 이벤트나 뷔페 같은 명목상 겉치레식의 모임보다도 처음부터 술자리 분위기를 만드는 건 어떨까? 늦게 오거나 일찍 온 사람들 모두 친숙한 분위기에 젖어 오랜 시간 모임에 함께 할 수 있도록 말이야. 한번 강남역에서 사회인의 밤을 이런 식으로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후문이 좋았다 하더라고. 이번 사회인의 밤도 그런 분위기속에서의 모임이 됐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선배님은 ‘교양은 스포츠댄스가 최고다!!’ 라고 운을 떼셨어요.
“무용과 누나들과 춤추는데 친해져서 우연히 만나면 음료수도 사주시고 했거든^^ 그 당시 교수님이 이번 무한도전 스포츠댄스 심사위원이기도 하시더라고.
진지하게 말하자면 음, 사회학과에서 배우는 이론이라는 게 참 어려워. 그렇지만 세상을 설명하는 학문, 사회학에 흥미를 느끼고 전공서적도 읽고 쓰고 싶은 글도 자유롭게 써 봤으면 좋겠어. 요즘 애들을 보면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고 이것저것 많이 하는데 이것도 좋지만 우리후배들은 사회학 지식도 많이 쌓고 토론과 세미나에도 많이 참여해서 이런 수업들도 많이 들었으면 좋겠어.“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미소가 매력적이신 이진영 선배님이셨습니다.^^

불안을 버리고, 많이 즐겨라!

2011년 10월 15일. 삼성동에서 조하나(01학번) 선배님을 만났습니다. 키도 크고 성격도 쾌활하신 조하나 선배님, 이진영 선배님과 함께 즐겁게 대화하는 분위기로 인터뷰가 진행되었어요.

선배님께서는 학창시절에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하셨다고 해요. 과 학생회장뿐만 아니라 언정대 회장도 하시고 총학생회장에도 출마하셨던 분이세요.

“그 시기에 스승의 날을 맞이하게 되었어. 우리는 작은 이벤트로 교수님의 캐리커쳐가 담긴 쿠션을 선물해 드리기로 했어. 그 쿠션을 꽃다발과 함께 교수님들께 전달해 드리고 모두 모여서 노래를 불러 드렸었는데, 그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

현재 선배님께서는 충주에서 영어강사를 하고 계세요. 학교에 다닐 때는 전공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불안해하셨지만 지금은 사회학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신다고 해요. 현상을 겉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좀 더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게 되었기 때문이죠.

“배움이라는 게 어디서 무엇을 배우느냐보다, 어디서든 무엇이나 배우는 게 중요해. 그러니까 후배들도 미래에 대해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공부했으면 좋겠어.”

가장 기억에 남는 교수님으로는 김명수 교수님을 떠올리셨어요.

“김명수 교수님께선 날씨가 좋은날엔 가끔씩 학생들을 데리고 맛있는 식당에 데려가서 밥을 사주시곤 하셨어. 차도 사주시고.. 교수님의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신경써주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실 텐데 말이야. 다른 과 친구들이 그걸 많이 부러워했던 기억나^^”

웬만해서는 화를 안내시는 전성우 교수님께서 화를 내셨던 수업은 아직까지도 선배님에게 소소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하셨어요.

“수업 날에 한 친구가 수업 준비를 너무 안 해 와서 교수님께 혼이 났어. 우리가 봐도 발표 준비가 엄청 미흡했거든. 근데 뭐 그 정도는 화내신 것도 아니야. 우리 입장에서는 그냥 타이르는 정도였어. 그 정도로 전성우 교수님께서는 마음씨가 넓으신 분이야. 또 우리들에게 격이 없이 대해주셔서 정말 좋아. 교수님께는 지금까지도 연락드리며 지내. 작년에는 우리 과 캠퍼스 커플이 결혼식을 올리는데 주례까지 봐주실 만큼 너무 좋은 분이야.”

사회인의 밤에 대해 묻자 형식적인 행사가 아닌 선후배들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행사를 원하고 계셨어요.

“내가 학교 다닐 때 과방에 옛날 사진들이 들어있는 앨범이 있었는데.. 그 사진들을 찾아 잘 작업해서 영상이나, 앨범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아마 내 생각에는 돈을 주고서라도 가지려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그리고 선후배들이 기억하고 있는 학창생활이나, 교수님과의 에피소드 같은 것을 보여준다면 좋을 거야!”

요즘 스펙, 취업준비로 인해 스트레스 받고 있는 후배들에게는 젊은 시절을 누리며 살라고 이야기 하셨어요.

“내가 서른 살이 되고 보니까 살아가는 게 점점 각박해지더라구. 생활에 치이다보니 점점 하고 싶었던 것은 잊혀져가고.. 물론 서른 살이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적어도 20대라면 많은 것을 경험하고, 즐기고,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해. 젊음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가는 것이니까 마음껏 젊음을 누렸으면 좋겠어^^ 나도 나름 학창시절에 많이 놀았지만 지금 더 놀 걸 후회가 된다니까ㅎㅎ”

후배들이여 마음껏 공부하고, 시야를 넓혀라

2011년 8월 24일, 정보사회학과(사회학과)의 첫 번째 회장이셨던, 이재준(83학번) 선배님을 뵙기 위해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바쁜 방학동안 여유를 잊고 살았는데, 부산의 넓은 바다가 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바로 그 바다 앞에서 선배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저와는 24학번 차이나는 높은 선배님이라 긴장을 많이 했는데 엄청 젊어보이시는 분이 저에게 인사를 하셨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죠! 근처에 예약해두신 맛있는 횟집으로 이동해 식사를 하고 해운대 앞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선배님께서는 학교생활 중 운동권 기억이 가장 남는다고 하셨습니다.

“학생운동을 우리 때 굉장히 많이 했었어. 그 당시 학교라고는 정말 건물 몇 개가 전부이고 전철도 아직 안산선이 없었으니까.. 오래전이지. 학교 앞부터 지금 산업도로 있는(직선거리로만 약 3km) 부근까지 전경들을 밀고 갔었어. 그 당시에는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고 그저 우리가 밀어붙여야겠다 싶었는데, 가다보니까 거기까지 갔더라고(웃음).”

 

역시 선배님들께선 운동권 시절 얘기가 빠지지 않는 것 같아요. 지금 이재준 선배님께서는 광고 대행을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지금 주로 유럽 광고를 대행하는 미디어랩을 운영하고 있어. 일단 해외광고 대행업이니까 이 일을 위해선 그 나라의 언어를 할 줄 알아야겠지. 직원들이 기본 3개 국어에서 5개 국어 까지 다양한 언어를 하고 있어. 외국을 볼 때 너무 미국 위주로 볼게 아니라 유럽 쪽이나 기타 다른 곳들도 관심을 두면 좋겠어.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고 기회역시 똑같이 있거든. ”

 

국내를 벗어나 해외까지 시야를 넓히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선배님께선 구자순 교수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첫 학과 교수님이셨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내가 회장을 맡고 있다보니까, 교수님이랑 학과일 때문에 의견차이도 있고해서 자주 충돌했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기억에 남고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 아직도 구자순 교수님하고는 종종 연락도 주고받고있지. 개포동 댁에 놀러간적도 있었어.”

 

선배님께서도 역시 사회인의 밤은 소통의 공간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사회인의 밤 당일행사에 관한 얘기랑은 거리가 있을 수도 있는데, 역시 나는 선배들이랑 후배들이 함께 꾸준히 소통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으면 좋겠어. 인터넷 카페를 이용하건 facebook을 이용하건 말이지.”

 

마지막으로 선배님께서는 후배들에게 마음껏 공부하라고 충고하셨답니다.

“다른 사람들은 대학에서 많이 놀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늘 얘기하던데, 나는 그와는 반대로 공부를 많이 못한게 후회되서 공부할 수 있을 때 공부해라! 라고 꼭 전하고 싶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면 ‘세계를 보는 눈을 넓혀라’ 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사회학과 1세대가 전하는 추억

83학번 함기문 선배님을 만났습니다.

저희들에게는 정말 까마득한 선배이신 83학번 함기문 선배님은 정보사회학과가 사회과학대학이던 시절 처음으로 정보사회학과(구 사회학과)에 입학하신 그야말로 전설과도 같은 선배님 이십니다. 그 당시에는 사회과학, 신문방송, 문화인류대학이 함께 사회과학대학에 속해있었다고 합니다. 2011년 현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정보사회학과와 청춘을 함께하고 현재까지도 사회과학도로서 청춘같은 삶을 살고계신 함기문 선배님을 만나뵙고 왔습니다. 높은 학번 선배님이셔서 어렵고 딱딱할 줄 알았는데 친절하게 또 재미있는 분위기에서 인터뷰에 응해주신 선배님 덕분에 즐거운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저희가 대학생인만큼 선배님의 대학생활은 어땠을까 궁금했습니다. 선배님, 학교생활중에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일들이세요?

“제가 학교에 입학했을 당시에는 선배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제가 첫 입학생이었으니까요. 특히, 저 같은 경우에는 군대 제대 후 대학을 입학했기 때문에 대학은 저에게 남다른 개념이었어요. 대학 입학 후 곧 바로 취업준비를 해야했기 때문에 재미있고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한게 아쉬워요. 대학생활은 가장 황금같은 시간이고 자유로운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야 했지요. 그래서 주로 예비역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신문방송학과 친구들과 잘 어울렸던것 같아요.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떠올려 보자면, 최혜자라는 여자 동기가 학생회장에 출마해서 선거운동을 같이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포스터도 붙이러 다니고 그랬었거든요. 아, 또 하나는 원호대상자였던 여학생이 한명 있었어요. 그 친구 아버님이 1학년 여름방학 때 돌아가셨어요. 가정이 어려웠던 터라 장례치르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동기들끼리 십시일반으로 한푼 두푼 모으고, 교수님꼐 연락도 드리고 해서 어렵사리 장례를 치른 기억이 나요. 지금은 그 친구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 당시에는 모두들 생활이 풍족하지 못했지만 선배들에게 막걸리도 참 많이 얻어먹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선배님께서는 현재 사조산업 이사로 재직중이세요. 구체적인 일은 유통과 무역산업이시구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사조산업 유통사업부에서 육류를 수입해서 유통하는 일이에요. 기본적으로 회사일을 하려면 ‘어학능력’이 은 필수라고 생각해요. 특히 저와같은 유통업계에서는 수입, 무역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영어는 필수입니다. 그리고 컴퓨터도 어느정도 다룰줄 알아야 해요. 제가 학교 다닐 때에는 어학공부를할 여력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요즘 친구들은 어느 정도 여유도 있고 하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빨리 어학공부를 시작했으면 합니다. 대부분 지레 겁 먹고 안하려고해서 그렇지 시작만한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어학능력은 직장생활에 필수 입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자기관리는 필수 입니다. 건강관리, 특히 시간약속을 지키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제가 일하는 분야는 어느 정도 시간에 자유로운 편이지만 자기스스로가 느슨해질 수 있기 때문에 철저히 약속을 지키는 것도 습관으로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선배님, 선배님 학교 다니실때 기억나는 교수님이나 인상깊었던 수업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아무래도 처음부터 계셨던 구자순 교수님과 전성우 교수님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또 한분은 지금은 안계시지만 심영희 교수님이라고 범죄사회학을 전공하셨던 교수님 입니다. 세미나에 저희들을 자주 초대해 주셨는데, 그 분께 영향을 받은 동기중 한 친구는 갱생보호공단에서 일하고 있어요. 갱생보호공단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소속으로 출소자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에요. 저희들에게 신경도 많이 써주시고 많은 경험도 시켜주셨던 분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저희도 구자순 교수님과, 전성우 교수님 수업을 듣는데 정말 좋으신 교수님들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윤영민 교수님이나 김명수 교수님도 마찬가지구요. 심영희 교수님은 저희가 뵐 수 없어서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배님은 사회인의 밤 행사에 매번 참석하셨다고 들었어요, 사회인의 밤 행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면 좋을까요?

“선, 후배간의 만남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사회인의밤이 생각보다 참여율이 저조해요. 예전에는 구자순 교수님께 전화도 오고 그랬습니다. 사회인의 밤 행사에 참여해 달라는 전화를 받고 행사에 가면 참여한 동문들이 몇명 없어서 횅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동문회가 없어서 그런것 같더군요. 선배들이 했어야 하는 일인데 그렇지 못해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저도 작년에 사회인의 밤 행사때문에 선배님들께 연락드리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아쉽지만 작년에는 사회인의 밤 행사를 개최하지 못했어요. 이번에는 꼭 다른 선배님들도 뵜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 한말씀만 부탁드릴게요.

“노력하면 결과가 있다” 자기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사실 우리 학교가 안산에 있어서 분교라는 인식을 갖고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것으로부터 콤플렉스를 갖는다면 그건 스스로를 밑으로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일을 해보고 즐겨야 해요. 제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해외로 출장을 가서 배낭여행을 온 대학생들을 보면 부럽기도하고 한편으로는 아쉽게도 해요. 직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런 기회는 없어지니까요.

마지막으로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과는 학문적 성향이 강해서 신문방송학과나 다른 과에 비해 그런 길들이 뚜렷하지 않은 점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길을 잘 개척하고 노력한다면 불가능은 없어요, 어떤 일이든지 반드시 이루어 낼 수 있을겁니다.”

승무원이 되고 싶었던 사회학도

후덥지근했던 8월 22일 오후! 김혜리(04학번) 선배님을 강남역에서 만나뵙기로 했었습니다.

기대와 긴장을 안고 출구 앞에서 기다리는데 키도 크시고 에쁘신 한 분이 눈에 띄더군요. 재빨리 반갑게 인사를 드린 후에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선배님께서는 한우리 생활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셨어요.

“딱히 에피소드는 없는데요. 1학년 때 그냥 친한 선배 오빠 따라서 한우리를 들어갔거든요. 근데 한우리 들어가니까 술도 너무 많이 먹고^^ 그 때 농활도 갔었어요, 한우리에서. 농활 갔던거는 정말 좋았어요. 가서도 술먹기는 하지만, 일하는 것도 되게 재밌고, 제가 갔을 때는 비 맞으면서 하고 그랬거든요. 다녀와서 좀 아프긴 했는데 좋았던 것 같아요. 또 학교 축제할 때 친한 선배님들이랑 주점도 하고 하면서도 막 먹고 했던 게 재밌었어요.”

모 선배님께서는 ‘윤교수님 아들’이라는 별명이 있었다는데, 김혜리 선배님께서는 전성우 교수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밝히셨어요.

“전성우 교수님이요! 진짜 성품이 좋으시거든요. 학술제를 하면서 저희가 과티를 만들었어요. 단색 후드로 해서 만들어서 교수님들 한분씩 찾아뵈면서 드렸었는데, 전성우 교수님만 입고 오신거에요. 너무 좋아하시면서 저희랑 사진도 같이 찍고 이런 모습 보고 감동 받았었어요. ”

사회심리학, 컨텐츠 설계 방법론 등등…기억에 남는 수업으로 많은 과목들을 꼽으시는 선배님의 모습에서 학과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사회심리학>이란 수업이 있는데, 재밌었던 것 같아요. 강의 때 배웠던 게 사회에 나와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배우게 되는 여러 이론에 심리학에만 국한되어 있는 게 아니라, 여러가지로 유명하거나 사회에서 많이 쓰이는 이론들 있잖아요. 여기저기서 배운 이론이 나오는거 듣게 되면 신기하더라구요. 전체적으로 시야도 좀 넓어질 수 있구요. 아 <컨텐츠 설계 방법론>도 실무적인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사회심리학>이랑 <컨설방>이 좀 연결될 수 있는게 많았던 것 같아요. 홈페이지 유저들이 어떤 심리를 가지고 이용하는지에 대해서를 알 수 있어서, 같이 들었었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현재 선배님께서는 승무원으로 일하고 계셔요. 많은 여자들이 한 번쯤은 꿈꾸는 직업에 종사하고 계시지만, 승무원이 환상 속에서 사는 것만은 아니라고 하셨어요.

“보이는 것만 보면 막 놀고 먹고 이럴 것 같잖아요. 맨날 쇼핑하고 가서 여행다니고… 저도 그 생각으로 처음에 시작했는데, 이 직업이 승객들이 보이는 데에 말고도 안보이는 곳에서도 일을 하잖아요. 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는 게 너무너무 힘들어요. 무거운 것도 많이 들어야 되고 뜨거운 기내식을 오븐에서 꺼내면서 화상도 입구요. 예전에는 허리도 다쳤었거든요. 그래서 회사에 병가를 내고 한 한달정도 쉬었어요. 매일 한의원 가서 침 맞고 물리치료 받고 그랬어요. 한번 다치니까 이게 잘 안 낫더라구요. 거의 허리는 뭐 매일 아프고, 또 시차 때문에 잠도 잘 못자고 힘든 면들이 있어요.”

듣다보니 생각보다 꽤 힘들어보였어요. 선배님께선 체력, 영어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여자로서 한번쯤 해보고 싶을 수는 있는데, 심리적으로 힘든 게 많으니까 안보이는 것도 좀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체력도 좋고 영어도 잘하고 약간 오지랖있는 성격있잖아요.^^ 눈치도 빠르고 이런 사람들이 적응을 잘하더라구요. 이런 친구들은 적성에 잘 맞을 것 같아요.”

사회인의 밤에 대해 묻자 선배님께서도 역시 많은 선배들과 후배들의 만남의 장을 원하셨습니다.

“음..1,2학년 때는 과에 대해서도 그렇고, 앞으로 밖에 나가서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그렇고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지가 않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선배와 후배 사이에 대화도 많이 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학교 다닐 때는 학교 안에서의 모습만 보고, 대학생이라는 시각에서만 보게 되잖아요. 근데 막상 나와서는 그렇지 않은 게 너무 많아서 ‘내가 정말 우물 안 개구리 같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이런 여러가지 시야를 넓혀주기 위해서는 간접적으로라도 선배님들을 통해서 경험하고 넓혀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은 후배들이 많은데, 선배님께서는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하라는 말씀을 강조하셨어요.

“좋아하는 것을 정말 열심히 열정적으로 하면 뭘 해도 하는 것 같아요. 진짜 자신이 좋아하는 걸 정말 열심히 하고 찾아다니고 이러는 친구들은 언제가 됐던 하게 되더라구요. 관심있는 쪽을 많이 찾아다니고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학교 다닐 때 적극적이지 않았거든요. 승무원도 그냥 멋있다고만 생각을 했었어요. 유학을 갔을 때 친한 언니가 승무원하면 잘 어울리겠다는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갑자기 내가 해야되는 일일수도 있겠다 생각이 드는거에요. 그래서 유학을 마치고 들어와서 바로 준비를 시작했죠. 자격이 다른 지원자들보다 월등히 뛰어났던 것도 아니었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에 노력은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팔방미인이 들려주는 학과 이야기

날씨가 굉장히 좋았던 일요일, 잠실의 한 카페에서 임지현(07학번) 선배님을 만났습니다. ‘미인’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셨답니다.^^

선배님께서는 ‘-ism’를 추억으로 꼽으셨습니다. 홍보팀으로 직접 플랜카드를 붙이고 스탭 목걸이도 만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하셨습니다.

“선배들이 제안을 하고 동기들이 제안을 해주어서 학과를 위해서 한번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참여를 하게 되었어. 대단한 영상을 만든 것도 프로그램을 기획 한 것도 아니지만, 가장 기본적인 홍보를 맡아서 진행했다는 것이 뿌듯하고 기억에 남아.”

무엇보다도 ‘-ism’을 통해 여러 동기들과 선배들을 두루 알게 돼서 가장 즐거웠다고 말씀하셨답니다.

“사람들을 많이 얻게 되어서 좋았어. 고된 준비과정을 견뎌내고 나니 무언가를 극복했다는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어. 학술제가 진행되는 모습, 마무리되는 모습을 보면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감동과 만족감, 추억이 생겼어.”

선배님께서는 많은 수업들을 유익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각 교수님마다 한 과목씩 추천하며 꼭 들어보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추천 과목 리스트는 아래에 있으니 참고하세요.^^

현재 의료경영에 종사하고 계신 선배님께서는 후배들에게 이 분야를 적극 추천하셨습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모르지만 블루오션이라고 하시네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의료경영(병원행정)이야. 앞으로 의료경영이 블루오션 이지만 많은 학생이 아직은 모를 것 같아. 행정직이라는 업무가 굉장히 꼼꼼해야 하고, 짜여진 업무를 따라야 되지만 자기만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 어떠한 행정직, 또는 회사를 가더라도 자기만의 창의성은 항상 필요한 것 같아. 외국에 비춰볼 때 의료경영 분야는 앞으로 고령사회로 진입할 우리나라에서 커질 시장 중 하나야. 도전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어. 또 대학원 진학을 통해 좀 더 연구해보는 것도 좋아.”

이 분야에서 일하려면 반드시 팀웍이라는 덕목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회사에서 행정직을 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업무보다는 팀웍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회사는 나에게 업무의 전반적인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아. 내가 알아서 배우고 찾아서 해야해. ‘-ism’가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노력하는것 처럼, 회사도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한다는 점이야.”

선배님께서는 사회인의 밤은 많은 재학생과 동문들의 친목도모의 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히셨습니다.

“사회인의 밤을 좀 길게 해서, 많은 동문들과 친해지는 친목도모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졸업한 동문들은 회사를 다니면서 많이 지쳐있는 만큼 오랜만에 모여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즐겁게 얘기도 많이 하고 즐기는 자리였으면 좋겠어. 졸업한 선배와 재학중인 학생들이 팀을 이루어서 소규모 레크리에이션이나 무언가를 걸고 할 수 있는 게임이 있었으면 좋겠어.”

대학을 먼저 졸업하고 사회에 진입한 선배로써 후배들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씀도 남기셨습니다.

“대학에 들어와서 열심히 놀고 열심히 공부해서 학점 따는 것 다 좋아. 딱 하나 말해주고 싶은 것은 자기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어. 생각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글로 적어봄으로써 구체화시켰으면 해.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뭐고 내가 약한 부분은 무엇인지… 되도록 빨리 구체화 시켜서 도전을 해보았으면 바라. 누군가 내 인생을 살아주는 것이 아니야. 모든 답은 자기 안에 있어. 반드시 자기에 대한 생각을 오래 해보았으면 싶어. 꼭 글로써 적어보고 실천하는 용기를 가졌으면 해.”

머뭇거리지 말고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는 선배님의 말씀이 인터뷰를 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가슴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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