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학번 우정환선배님 인터뷰


지난 1학기 '정보기술과 사회'수업의 멘토이자 페이스북 친구인 94학번 우정환 선배님을 인터뷰했습니다. 저는 수업의 멘토님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 과 선배님이셨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인터뷰요청을 드렸고 인터뷰를 위해 홍대로 갔습니다. 사무실에서 나오신 선배님께서 저를 반갑게 맞아주셨어요. 저희는 바로 식사를 하러 자리를 옮겼습니다

대학시절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선배님께서는
 “내가 입학했던 94년 3월 4일이었지. 그 당시에 완공된 사회대(현 평생교육원)건물이 설립기념 커팅식 같은 걸 했었어. 그런데 선배들이 하는 말이 분명 겨울 방학 하기 전에는 없었던 건물이라는거야. 2달 만에 후딱 지어진거야. 그래서 부실공사다 뭐다 말이 엄청 많았어. 그런데 나는 입학하고 다음날 학교에 가자마자 선배들이 주는 피켓을 받고 멀뚱멀뚱 앉아서 시키라는 대로 건물 문을 막고 앞에 앉아서 데모를 했지. 더 웃긴 건 그 건물이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다는 거야. 마친 커팅식을 하고 학교 총장님이 계셨던 터라 그 건물 안에 총장님을 가둬놓고 문을 막고 데모를 했어. 그런데 우리과 구호가 뭐니. '선봉'이잖아. 사회대의 선봉인 우리가 항상 데모 같은걸 할때마다 선봉에 서야했어. 그래서 반나절동안 건물 앞에 죽치고 데모만 했었지.
그리고 다른 에피소드는 우리 과에 '역사문제연구회'라는 소모임이 있었는데,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자료를 읽고 서로 의견을 토론하는 거였는데 아주 격렬한 토론이었지. 일주일에 한번씩 모이면 세 네시간을 토론을 했어. 동기끼리 정말 싸울 것처럼 토론했지. 그런데 항상 그 끝은 술이었어. 그런데 지금 사회에 나와서 생각해보니까 그 모임이 굉장히 도움이 되고있단다. 우리 과에 은근히 소모임이 많았어. '달과 여섯 줄'이라고 달과 6펜스를 패러디했는데, 기타 소모임이었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서로 기타 연주도하고 공부도 했어. 이것도 역시 끝은 술이었어. 그 때는 학교 앞에 술집도 별로 없고 그래서 노상을 많이 했지. 본관 앞 잔디밭이 주 장소였고 아니면 학교 앞 콘크리트길에 불피워놓고 많이 마셨었지.
아, 그리고 내가 1학년 때 학교에서 연예인을 봤는데 본관 잔디밭에서 자다가 수업을 가려고 벌떡 일어났더니 드라마촬영을 하고 있는 거야. 이영애랑 정혜영이랑 여주인공인 드라마였는데 그때 막 이영애한테 가서 싸인받았지 그리고 언정대로 들어가는 길 거기서 교수님이랑 이야기하고 있는 이병헌을 봤어. 그래서 다짜고짜 가서 악수를 했어. 그리고 인문대(지금의 국제문화대) 문화인류학과에 송윤아가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우리 과 친구들이랑 몇 명이서 문화인류학과 교양수업을 신청했어. 딱 첫 수업에 들어갔는데 송윤아가 온거지. 그때 교수님이 수업 끝나고 싸인도 받지 말고 사진도 찍지 말고 조용히 해달라고 안 그러면 송윤아씨가 수업에 참석을 못한다고 우리에게 부탁했어. 그런데 그게 말이 통하겠니. 수업끝나자 마자 우르르르 몰려가서 결국 다음 수업부터는 안 오더라.. 그렇게 쭉 안 오다가 졸업식 날 봤어. 졸업식 날 또 우리는 우르르 몰려가서 같이 졸업식 단체사진 맨 앞줄에서 송윤아랑 나란히 사진을 찍었지. 그 사진이 아마 내 동기한테 있을 텐데.. 아까워....
여기까지가 군 입대 전이라면, 제대 후에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 내가 복학을 우리 과 동기 3명이랑 '규찰대(학생방범단)'이라는 걸 했어. 밤에 외부인 출입이나 술 먹고 뻗은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일종의 아르바이트 같은거지. 그때 내가 여러 명 잡아냈지. 특히 학교 안에서 애정 행각하는 사람들 엄청나게 잡았어. 그런데 점점 재미가 없는 거야. 이 일이 모두 모여서 출석체크를 하고 각자 장소로 흩어지는 건데 그때 지금의 셔틀콕 뒤쪽에 있는 쥐구멍으로 나가서 친구 자취방에서 TV보고 놀다가 복귀할 시간이 되면 슬쩍 복귀하곤했어. 규찰대 옷이 경찰관 야간 업무 때 입는 옷처럼 어두운데서 반짝반짝하는 옷이었는데 그 옷을 입고 밖에 나가면 딱 걸리니까 그 옷을 학술관 건물쪽에 슬쩍 벗어놓고 다른 친구들이랑 나갔다가 돌아와서 입으려고 하는데 그때 딱 수위아저씨가 손전등을 들고 "누구야!"하고 소리치시는 거야 그래서 너무 놀라서 학술관 창문을 열고 건물 안에 들어가서 창문 밑에 숨어있었어. 별수있 나 딱 걸려서 새벽2시까지 훈계를 받았지.
또 가을 축제 가요제 '별망가요제'였나? 그게 민주광장에 무대를 설치해서 열렸는데 예선통과해서 결국 대상 탔지. 그 때 상품이 오디오였어. 그런데 그 시간이 딱 규찰대 활동하는 시간이어서 그 번쩍이는 규찰대 옷을 입고 김경호 노래를 불렀었지. 복학 후에는 98년 2학기부터 99년 1학기까지 우리 과 학생회장을 할 때였는데 밥을 먹으러 사회대에서 학생식당까지 걸어갈 때면 어느 샌가 내 뒤로 후배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따라왔어. 그 당시 한달 용돈으로 30~40만원정도면 엄청 많이 쓴거지. 그게 다 후배들 밥값이었다고 생각하면 돼.”
라며,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하고 계신 일과 그 일에 관심 있어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 여쭤보았습니다.
선배님께서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웹 에이전시'야. 쉽게 이야기하면 이 전에 인터뷰했던 김원민이 오프라인 기반의 일이라면, 나는 온라인 기반이지. 웹 사이트 구축 & 컨설팅을 하는 건데 삼성화재 다이렉트 사이트 디렉팅, 삼성화재 대표사이트 PM, SK텔레콤 TTL, LG전자 엑스캔버스, 교모문고 모바일 사이트 등등 다양한 분야의 일들을 의뢰받아서 하고 있지.
 이 업계에 있다 보니 옛날에는 오해를 많이 받았어. "무슨 일 하세요?" 물어봐서 "홈페이지 만들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면 "저희 홈페이지도 만들어주세요~ 백 만원이면 되나?" 이러는거야 사실 이런 사이트를 구축할 때는 단위가 억 단위 이상으로 움직이거든.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 마땅히 설명하기가 힘든 게 사실이야. 예전에는 메이저 웹 에이전시에 있다가 지금 일하는 곳으로 왔는데 처음 왔을때보다 규모가 배로 커져서 굉장히 뿌듯해. 아, 이 업계에 우리 과 출신이 꽤 있어. 은근히 온라인업계에서 일하는 우리 과 출신이 많단다.
사회학적 지식이라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 학교 다닐 때 했던 토론 반, 학생회장, 데모, 노래 부르기 같은 것들이 기획자로서 클라이언트들에게 우리의 PT를 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 동기, 선후배들을 설득하려고 했던 학생회장의 경험이 설득에 대한 스킬을 키워 준 것 같아. 웹 기획이라는 일이 다방면의 일인데 나는 이 직업에 대해 후배들에게 이야기 할 때 '탤런트나 영화배우'와 똑같다고 이야기해. 하나의 역할에 빠져들었다가 그 일이 끝나면 빠져나오고 또 다시 다른 역할에 몰두하고.. 어떤 분야의 일이 들어올지 모르니 말이야. 3~4개월 동안은 그 일에만 몰입해야하지. 그러다 보니까 또 다른 상식들이 많이 늘어나. 세대를 아우르는 이해도 생기지. 이 사이트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 회사가 제공하는 정보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니까. 이 일도 TV CF만드는 것과 똑같은 고민과 아이디어를 생각해야하지.
'다이나믹한 삶을 경험하고 싶다면 도전하라.'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어. 안정된 생활을 추구한다면 이 업계는 어울리지 않아. 언제 어떻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말이야. 잠시도 여유롭게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어. 그렇지만 자유로운 분위기와 다방면의 감각이 깨어난다는 것, 여기저기 호기심도 늘어난다는 점, 같은 나이여도 생각이 젊은 직업이 바로 웹 에이전시지. 몸은 힘들지만 내가 구축하고 설계한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보람도 느끼고 재미있는 직업이야.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순수학문이고 사실 이곳을 나와서 무슨 일을 할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이 많았어. 옛날 사회학과라고 하면 학생 때는 데모, 노동 이런 것들을 하다가 사회에 나와서 그나마 신문사나 리서치회사에 들어가는 제약적인 모습이 많이 보였지. 하지만 내 동기들만 해도 직업군이 굉장히 다양해. 경찰 경장, 제약회사, 해외 바이어 통역, 보석감정사, 삼성SDS 등 사회학이라는 것이 하나의 뚜렷한 길이 없다는 게 강점이 될 수 있어. 어느 분야에서든지 응용이 무궁무진하고 그만큼 직종이 다양해질 수 있어!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에 대해서 선배님께서는
“ '사회통계'수업이 아마 그 때는 윤영민 교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을거야. 내가 수학도 싫어하고 상식이 풍부해졌으면 좋겠다 싶어서 사회학과에 온 거였는데 첫날 딱 가니까 이건 그냥 수학인거야. 그때 교수님께서 "이 수업에 흥미가 없는 사람은 안 들어와도 좋다."라고 하셨지. 그래서 진짜 몇 번 안 들어갔는데 성적이 D였어..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하고 4학년 1학기때 재수강을 했지. 성적은 A+을 받았어. 처음 D를 맞을 때 그 수업이 SAS라는 통계프로그램을 썼는데 너무 어려운거야 그래서 결국 그렇게 된 거지. 그런데 내가 3학년 때 중앙동 YMCA에서 저녁시간에 아줌마, 아저씨들한테 20만원씩 받고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같은 것들을 가르쳤거든? 복학하고 사회통계를 재수강하니까 프로그램이 SAS에서 SPSS로 바뀐거야! SPSS가 엑셀처럼 쉬워서 배우기도 좋아서 흥미도 생기고 성적도 잘 받게  된거지. 사회통계가 사회에 나와서도 꾸준히 쓰여. 정말 유용한 수업이지. 또 윤영민 교수님 수업이었는데 논문한권을 읽고 A4용지 한 장으로 요약해오라는 것도 있었어. 그건 점수를 아주 잘 받았지.
김명수 교수님의 수업 중에 '일탈'이라는 주제를 배운 적이 있어. 말 그대로 '일탈사회학'이라고 불렀는데, 영화 '게임의 법칙'을 보고 '일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글 쓰는 과제였어. 사실 나는 그때까지 사회학이라는게 이론적인 것만 있고 우리 실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학문으로 생각했었어. 하지만 이 수업을 통해서 실생활에서도 이용되고 우리 사회를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 과에 흥미를 갖게 되는 계기가 됐지.”라며 말씀해주었습니다.

선배님께 사회인의 밤의 의미에 대해 여쭤봤습니다.
 “나 때만 해도 사회인의 밤을 할 때는 윗 기수 선배들도 별로 없을 때고, 그나마도 반 정도는 학교를 같이 다니고 있었지. 숫자도 적어서 연락에 큰 어려움은 없었어. 그 때는 후배들이 선배들을 위해 보여준다는 개념으로 공연기획을 많이 하고 그랬어.
그런데 아쉬운 게 '동문회'가 없다는 것이었어. 지금 일을 하다 보면 다른 학교에서 동문회사이트같은 것들이 의뢰가 들어와. 그 일을 맡아서 하다보면 '동문회도 하나의 소셜 네트워크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돼. 이전부터 있었으면 동문회라는 울타리 안의 한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가질 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지. 내가 지난 1학기 '정보기술과 사회'수업의 멘토로 참여는 했지만. 우리 과 후배들에게 선뜻 선배라고 소개를 할 수 없었던 사실도 어떻게 보면 이런 네트워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울타리 안에서의 정보교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학연이라는 것이 구시대적인 생각이라지만 사회에 나왔을 때 자기만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있고, 그 안의 구성원이라는 의식이 정말 필요한 것 같아. 큰 일이나 사회적으로 연결된 일이 있을 때 그런 네트워크가 큰 도움이 되지. 동문회의 핵심은 '서로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다른 선,후배,동기가 사회 안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는지라도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그런데 그런 체계가 지금까지 없다는게 아쉬워서 이번 사회인의 밤을 계기로 이런 체계가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아. ”라며 말씀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한마디 해주었습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을 빨리 찾아라!"
 직장생활을 11년째 하고 있고 어느 정도 위치에서 후배사원들의 면접을 보다보면 나름대로 보이는 것이 있어. 같은 조건이지만 그 중 굉장히 다양한 일을 해온 사람을 보면 좋은 점도 있지 여러 가지 일들을 접하고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져. 하지만 그 사람들을 보면 졸업 후 명확한 자기의 뜻 없이 우연히 들어오는 일에 여기저기 발을 담그고 '이렇게 여러 가지 하다보면 나랑 맞는 일을 찾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야. 목표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해. 나는 그나마 그런 방황을 짧게 한편이었어. 그나마도 돌이켜보면 1,2학년때는 정말 많이 놀아서 좋지 않은 성적을 그나마 3,4학년때 바짝 공부해서 졸업했어. 사회에 나와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잘하는 일인지, 좋아서 하는 일인지도 모르고 스스로의 비전을 찾지 못한 채 살고 있었던거야. 내가 할 수 있고 잘 할수 있는 일을 미리 찾아놨다면 지금보다 더 잘되지 않았을까? 물론 대기업을 가는 것도 좋아. 그렇지만 내가 거기서 무엇을 할 건지 목표를 분명히 해두는 게 중요해. 스펙도 좋지만 그래도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결정하고 사회에 말을 딛는 사람이 더 잘 살수 있다는 것을 분명한 사실이야.”라며 조언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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