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학번 권운혁 선배님을 만나다!

11월 8일 학교앞 카페에서 87학번 권운혁 선배님을 만났습니다^^

선배님께 대학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지 물어보았습니다.

“에피소드는 참 많은데, 우리 과를 가장 기억하고 동기들을 가장 지금도 생각하면서 기분 좋게 느껴졌던 게, 우리 때는 등록금부터 시작해서 학원저자투쟁을 했었어. 눈 오는 날 여기가 포장이 안돼서 장화를 신고 첫 등교를 했었어. 학원저자투쟁이 시작됐었어. 과대를 뽑고 첫 번째 총회 안건이 수업거부 겸 총파업이었어. 혈서도 쓰고 그랬었지. 내용도 모르고 막 했었는데 그때 기억나는 것이 만난 지 몇 개월 안됐었는데 다른 과들에 비해 우리 과는 참여율이 높았어. 그리고 26명이 여자였고 19명이 남자였는데 여자 동기들이 철야 농성하는 남학생들을 위해 도시락을 싸다준 경우도 있었어. 본관점거 농성을 하고 있었는데 경상대 교수님이 올라오셔서 무역학과, 경제과 애들을 우산으로 때리고 부모님 욕을 하면서 이렇게 가르쳤냐고 야단을 치셨어. 교수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깐 학생들이 얼마나 답답하겠어. 우리 과 전 모 교수님께서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주시면서 잘 먹고 하라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 그리고 88년도 대동제 때 주점한다고 도서관 앞에 주점을 차려놨는데 냅킨에다 담뱃불을 붙이고 버리는 바람에 텐트들이 6개나 탔어. 아마 88학번 애들은 그 기억이 새록새록 할 거야. 워낙 우리 과가 단결이 잘 됐었어. 우리 동기들이 예뻤어. 그러다 보니깐 타과에서 찝쩍거리는 애들이 많았지. 절대 그걸 또 그냥 넘기지 않았어. 과 패싸움도 하고 그랬어. 그리고 우리 때는 학생증 하나면 다 해결이 됐었어. 학생증을 맡기고 술을 마셨었거든. 술집에서도 학생들이 가지고 올 거라고 생각했었고 학생들도 가능하면 가져다주려고 노력했었지. 근데 안 갖다 주는 몇몇과가 있었는데 그중에 한 과가 우리과야. 그리고 그 때 당시에는 사회학도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했어. 예를 들면 총학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면 사회대에 물어보고 했을 정도였어. 총학생회에서 집회를 하면 500명이 모이잖아. 그중에 사회대가 350명이야. 그럼 사회대는 4학년 빼고는 거의 다 출석했다고 할 수 있지.”

지금 하시는 일과 그 일에 관심이 있는 후배들에게 해부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 물어보았는데요.

선배님께서는 “우리가 처음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가질 때는 취약 계층이라고 해서 자본주의 경쟁에서 탈락된 분들에게 국가가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기초생활 보장을 해야 한다고 봤던 것이고 노동능력이 있으신 분들, 이런 분들에게는 구체적으로 그것으로 경제적인 완전자립보다는 노동의 권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 생산자로서 부분, 이런 보람을 느끼게 해야 한다. 이런 보람들이 반인간적이거나 반사회적이면 안 되잖아. 가장 크게 보람으로 올 수 있는 것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자는 거야. 2001년~2002년 그때 당시만 해도 다양한 방식이 있었어. 학력 없고 자본 없고 노동능력마저 100%아니신 분들과 할 수 있는 사업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 우리는 재활용 이라는 것을 선택했지. 기업을 만들어서 공동체 활동을 해보자 했던 것이야. 사회적 가치라는 것이 화폐가치로 환원이 안 되니까 누군가의 지지도 없고 우리끼리 하다 보니까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거야. 과감하게 국가나 사회에 청구할 수 있게끔 2차 3차의 비용으로 얼마나 줄이는 것이다, 이게 결국은 국가가 지불하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이게 우리의 생산이다, 이것들을 설득시켜나가는 작업을 해보자 라는 측면에서 중점적인 고민을 했었지. 사회적 기업이 지금처럼 제도나 틀에 맞추는 게 아니고 매 과정이 사회적이야 한다고 생각해. output에 연연하지 많고 얼마나 많은 사회적 동의를 만들어 내는가가 중요해. 사회적 기업이 하는 일은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것이야.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그 가치에 동의하고 같이 움직여야 사회적 기업이라고 할 수 있지.

일단 특별한 조건은 없어. 사회적 기업이 뭔지 마음으로 받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자기 스스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해. 사회적 기업이 무엇인지, 왜 이것이 지금 트랜드 인지 이런 부분에서 충분히 생각해 봐야해.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불행하다면 사회적 기업이라고 할 수 없어. 사회적 기업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첫 번째 조건이라 생각해.”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으신지 여쭤보았습니다.

” ‘여성 사회학’을 가르쳐 주셨던 교수님이 기억에 남아. 그때 당시 총학생회의 공략이 조국 통일이었어. 전국대학생재표자협의회에서 대표로 8월 15일 임수경 대표가 북한으로 간 거야. 그때 생각나는 것이 여성학 교수님께서 임수경의 방북이 일탈이냐 아니냐, 그런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이나. ‘통계학’을 가르쳐 주신 교수님도 기억나. 수학과 교수님이셨는데 희한하게 내가 학년대표였는데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그 시간에 총회, MT 등 학과행사가 맨날 잡혀서 6번을 빠졌었어. 한 날 교수님이 “수업이 맘에 안드는거냐, 내가 만만하냐?”라고 말씀 하신 적도 있어. 우리 때는 영어가 강독, 랩실에서 하는 거, 외국인 회화 세 개가 있었어. 세 개 중에 하나라도 F가 되면 다 F였어. 한참 반미 투쟁이 심하던 시기였어. 감정이 지배했던 때였지. 우리가 미국 놈한테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용납이 안됐던 것이지. 그래서 교수님이 들어왔을 때 ‘yankee go’ 그랬지. 교수가 기분이 나빴었나 봐, ‘go out’ 그러더라고. 그리고 나서는 재수강했는데 또 외국인교수가 그 교수가 걸린 거야. 또 F처리를 받았지. 4학년 2학기 졸업을 해야겠는데 또F인거야. 전성우 교수님의 도움으로 영어 점수를 통과해서 졸업을 했지.”

사회인의 밤에 어떤 행사가 되면 좋을지 물어보았는데요.

“그동안 어떤 컨셉으로 진행돼왔는지 모르겠지만 가면 선후배가 만날 수 있는 자리였으면 좋겠어. 사실 가봐야 몇몇 없어. 평소에 소통을 안 하다가 만나니깐 어색한 자리가 될 수도 있어. 학교에 있는 후배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사회인의 밤이란 행사가 학과를 졸업한 선후배들이 모이는 자리야. 근데 모이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어. 많이 모이게끔 하는 노력이 필요해. 그리고 교수님들의 협조를 부탁하는 것도 좋아.”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당부해주고 싶은 한마디를 해주셨습니다.

“기회가 될 때 열심히 살고 자기 분야에서 맡은 일에 변명하지 않을 정도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지금까지 내가 맡은 일에 후회를 해본 적이 없어. 아쉬운 적은 있었지만. 사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면 가정을 지켜야한다는 핑계로 여러 가지를 타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아직은 타협하기 보다는 즐겁고 행복한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더 많은 열정을 투자하는 후배들이 됐으면 좋겠어.”

선배님의 목소리가 직접 듣고싶으시다면?^___^☞클릭클릭!

87학번 권운혁 선배님을 만나다!”에 대한 1개의 생각

  1. 권운혁 후배 참 멋진 친구였는데.. 얼굴을 보니 무척 반갑네요..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예전에 집이 학교 근처 비봉이었던것 같았는데~
    연락처 아시는분 후사하겠슴.. 85학번 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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