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대중매체, 어느쪽이 민주주의에 기여할까?

지난 4월 19일부터 23일 까지 미국의 뉴욕타임즈 웹사이트에서는 “폭풍을 탄 사람들(1970년대 록 그룹 도어즈의 노래 제목: 노래를 들으려면 여기를 클릭)”이라는 기명 컬럼의 내용을 둘러싸고 상당히 심각한 온라인 논쟁이 벌어졌다. 3백개 이상의 댓글이 올라오고 댓글의 추천수가 최대 700개가 넘었다.
논쟁의 핵심은 인터넷이 이념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더 뭉치게 하는 지 아니면 이념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지이다.
논쟁의 발단은 하버드 법과대학원의 카스 선스타인(Cass Sunstein) 교 수(그는 2009년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미국의 전자정부 수장 혹은 국가 CIO라고 간주될 수 있는 자리에 임명되었다)가  2001년 여름 보스턴 리뷰지에 기고한 ‘매일 우리: 인터넷은 민주주의를 위한 진정한 축복인가?’라는 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인터넷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엄청난 정보의 양과 정보의 취사선택 기능이다. 정보의 바다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성향과 기호에 맞는 정보만을 선택한다. 인터넷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 런데 인터넷의 그러한 탁월한 선별 기능은 의도되지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알고 이해할 때 가능하다. 지역사회의 개방적 장소나, TV와 신문 같은 통합적 성격의 대중매체는 그런 만남의 기회를 제공했다. 동네 커피하우스나 선술집에서는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과 마주치는 일이 흔하고, 대중매체에서도 사람들이 자신의 입맛에 맛지 않는 뉴스나 주장과 마주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신의 입맛대로 정보를 취사선택해서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은 그러한 통합적 공간-소위 공공영역-을 파편화시켜버린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종교적 광신주의나 테러리즘과 같은 집단극화가 발생하고 민주주의도 공동체도 약화된다는 주장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이론적으나 실증적으로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선스타인은Republic.com (2002), Republic.comm 2.0 (2007), Going to Extremes (2009)와 같은 일련의 저서에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그는 기네스북에 올라야 할 정도로 글을 많이 쓴다. 어떤 해에는 6권의 책을 출간했다!).
선스타인의 주장이 다시 화제가 된 것은 며칠 전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 실증적 연구가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이념적 분리”라는 연구 논문인데, 그것은 아마도 이 논쟁에 관련해 지금까지 발표된 실증연구 중 가장 빵빵한 데이터와 정교한 척도를 사용한 역작이라 생각된다. 이 연구의 하이라이트는 인종분리 연구에 쓰이는 ‘고립지수(Isolation Index)’를 가지고 각종 매체와 오프라인 만남을 비교한 부분이다(아래 인용 표 참조). TV 뉴 스의 고립지수(.018)가 가장 낮고, 잡 지(.029), 케이블TV 뉴스(.033), 지방지(.041), 전국지(.104) 순으로 높은데, 인터넷은 전국지보다 좀 낮은 .075이다. 그 리고 흥미있게도 인터넷은 오프라인의 가족, 이웃, 직장, 봉사단체 등에서의 대면적 만남보다 고립지수가 낮다. 또한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인터넷의 고립지수는 계속 낮아졌다.

또 다른 흥미있는 결과는 미국의 인터넷 사용자들이 야후뉴스와 같은 통합적인 성격의 뉴스 사이트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는 사실이다(그 덕분에 찌질한 검색엔진을 가지고도 야후가 계속 흑자를 내는건가?). 우리로 치면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과 같은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많이 읽는 셈이다.
NYT의 컬럼은 그 연구를 인용해 인터넷 사용자들이 고립적이고 배타적인 자세가 아니라 매우 개방적인 자세로 뉴스를 소비하고 있으며, 만약 미국사회에 고립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이 인터넷 때문은 아니라고 결론을 맺는다.
인터넷의 파편화 가설에 대해 독자들의 의견은 찬반이 엇갈린다. 대부 분 개인 경험에 근거한 주장들이지만 그래도 이념적 성향이 다양한 사람들의 댓글들이라 매우 흥미있고 유용하다.
우리 사회의 경험으로 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 쟁점에 관해서는 국내 학계에서 아직 체계적인 연구가 나오지 않았다. 다음 달에 발표될 예정인 필자 자신의 연구에 의하면 인터넷의 파편화 현상은 존재하지만 민주주의를 약화시킬 정도로 심각한 것 같지는 않다.
예컨대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글을 얼마나 자주 읽는가라는 설문에 대해, 거 의 혹은 전혀 읽지 않는다는 응답자가 45%, 가끔 혹은 자주 읽는다는 응답자가 55%이다. 그런데, 인터넷을 오랜 시간 사용할수록, 인터넷 사용능력이 뛰어날수록, 그리고 포스팅을 많이 할수록 반대의견을 자주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의 연구결과와 별로 다르지 않다. 왜 그런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올까? 어쩌면 선스타인과 같은 인터넷 파편화론자들은 두 가지 점에서 온라인상의 만남을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첫째, 현대가 민족국가의 시대라는 점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민족국가는 단지 정서적인 측면에서 뿐 아니라 이해관계의 측면에서도 강력한 공동체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어느 나라나 외국과의 전쟁, 외 교, 사회보장, 의료보험, 경 기회복 등의 현안이 민족국가의 중앙정부에서 다루어지는 게 현실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심지어 스포츠 경기도 국가 대항전이 인기가 높다. 소속감과 충성도의 측면에서 가족을 제외하고 민족국가만큼 강력한 공동체는 없을 것이다. 민족국가의 강력한 원심력은 시민들의 시각을 끊임없이 범국가적 뉴스로 끌어당긴다. 선스타인은 이점을 가볍게 보고 있는 것 같다.
둘째, 그는 온라인 만남을 지나치게 정보와 지식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 너무 심각하게 온라인 대화를 바라보는 게 문제라는 말이다. 온라인 대화에 있어 정보와 지식 습득 못지 않게 중요한 측면이 만남 그 자체의 즐거움이다. 온 라인 대화에서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로부터 위안과 위로를 기대하기도 하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다른 생각이나 입장을 가진 사람들과의 다이내믹한 만남을 즐기기도 한다. 자기 편을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다른 편과의 싸움은 얼마나 재미 있는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 있는 것이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는데.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인터넷과 대중매체에 대한 평가는 쉽지 않다. 더 구나 최근의 매체 이용 패턴에 일어나는 변화를 보면 인터넷과 대중매체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있다. 하 지만 이러한 논의의 가치는 민주주의와 공동체가 직면한 어려움에 대해 인터넷에 애꿎은 책임을 전가하려는 경향에 쐐기를 박는데 있다. 걸핏하면 인터넷과 네티즌들의 공론을 폄하하고 나서는 몇몇 시대착오적 구매체의 영향에 대한 좋은 해독제이다.
사족: 학술적인 쟁점이 공중의 관심 대상으로 발전하는 모습이 부럽다. 우리도 지식인층이 좀 더 두터워지면 그게 가능할텐데 언제쯤 그런 시대가 올런 지….(‘정보사회 읽어내기’에서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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