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미디어, 공동체를 위협하는가

몇 달 전 미국의 한 젊은 프로그래머가 Media Shift에 소셜미디어(Social Media)에 관한 매우 분석적인 글을 올렸다(Dan Schulz). 개방, 참여, 공유의 정신을 대표하는 소셜미디어에 대해 찬양 일변도인 요즈음 분위기에서 모처럼 비판적인 글이라 무척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이미 미국인의 30% 이상이, 그리고 세계적으로 수억명이 사용하고 있으며, 지 금도 욱일승천의 기세로 뻗어나가는 매체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비판정신과 용기가 돋보였다.
그는 지난 10여년 동안 온라인 커뮤니티에 관여된 일을 해왔는데 아직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사용하지 않으며, 블 로그에 글도 올리지 않는다고 했다. 거기에 커뮤니티가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대부분의 소셜미디어가 개인화(personalization)를 추구하며 사회적 관계를 개인(individual)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아마도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 운동을 주도하는 아미타이 에치오니(Amitai Etzioni) 교수가 그 글을 읽었으면 매우 반가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현실은 실천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공동체가 아니라 네트워크가 대세이다. 캐 나다의 원로 사회학자 배리 웰먼(Barry Wellman)은 이미 10여년 전에 미국과 캐나다와 같은 선진국에 네트워크 개인주의(networked individualism)가 등장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소위 선진국의 사회관계가 끈끈하고 폐쇄적인 공동체(community)에서 느슨하고 개방적인 네트워크(network)로 변하고 있으며, 인간 존재는 공동체의 구성원(members of community)에서 네트워크 개인(netwoked individuals)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용어로 네크워크 개인주의(networked individualism) 시대가 온 것이다.
최근에 퓨(Pew) 인터넷 조사는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폭발적인 확산을 거증하며 네트워크 개인주의의 승리를 확인해 주었다. 웰먼 교수가 흐뭇해 할 일이다. 그러나 사실 그는 네트워크 개인주의가 발현되는 조건 중 하나로 경제적 부유함을 들었다. 그런데 페이스북의 세계적 확산이 보여주듯이 소셜미디어의 확산이 꼭 경제발전 수준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그의 이론을 확실히 지지하는 것은 아님을 지적해 두자.
그렇다면 공동체와 관련해서 소셜 미디어와 세계적 확산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 젊은 프로그래머는 예리한 사회학적 감수성을 지녔다.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차이를 금방 알아차린 것이다. 오랫동안 온라인 커뮤니티에 관련된 활동을 해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커뮤니티를 단순히 개인들의 집합으로 간주하는 조악한 환원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과학자들보다 몇 배 나은 것 같다. 최근의 한 논문에서 보스턴대 경영학과의 델라로커스라는 교수는 군중이나 커뮤니티는 개인들의 합(sum)에 불과하다고 거침없이 주장하였다(Dellarocas, 2010). 대담한 건 지 아니면 단순한 건 지….
지금은 마치 유행이 지난 옷처럼 보이지만 지난 20여년 동안 일어난 온라인 커뮤니티의 융성은 자본주의든 교통통신의 발달이든 인간이 지닌 커뮤니티의 본성을 결코 약화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음을 상기하자. 앞다투어 온라인 커뮤니티를 찬양하던 비즈니스맨, 경 영학자들이 이제 남에게 뒤질세라 소셜 미디어를 찬양한다. 그렇다고 20년 사이에 인류사회가 공동체적 사회에서 갑자기 네트워크적 사회로 바뀌었을 리는 없다.
아마도 이런 것은 아닐까? 인간은 과거나 지금이나(그리고 앞으로도) 공동체적 존재이지만 1) 공 동체의 성격이 시대에 따라 달라졌고, 2) 가족을 제외하고 다른 공동체들은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의 주장처럼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인 것이 아닐까?
과거의 달리 현재의 공동체는 상호의존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함께 생산적인 노동을 수행하는 경우도 비교적 드물고, 지리적 이동성이 높아 정서적 교류도 많지 않다. 물질적 지원이나 정서적 지지(support)와 같은 역할을 친구나 때로는 이웃이 대신해 준다. 이동성이 높아 사람들은 매우 유동적인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직장을 옮기거나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서 늘 새로운 공동체에 들어가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과거의 인연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평생 고락을 함께할 때와 같을 수는 없다. 때문에 같이 사는 가족을 제외하고 사람의 일상 속에서 공동체란 상당부분 관념적이며, 일상생활의 배경으로 존재하거나 삶의 대단히 제한된 부분에만 관여하는 지도 모른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는, 1) 인간이 일상적 삶에 있어 강렬한 대화욕구 혹은 정보욕구를 갖고 있으며, 2)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며, 3) 그것은 공동체 안의 만남일 수도 있도 밖의 만남일 수도 있는데, 이점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촉진하지는 않는 것 같다. 페이스 북의 그룹 기능은 온라인 커뮤니티 구성을 가능하게 해주지만 별로 인기가 없는 것 같고, 하워드 라이골드(Howard Rheingold)는 트위터가 공동체적이라고 강변하지만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본인은 자신의 팔로워들에게 공동체적 유대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팔로워들 사이에도 그런 유대감이 있을 지 의문이다. 스타와 팬으로 이루어진 온라인 커뮤니티가 적지 않게 있지만 그것은 의사공동체(pseudo-community)이 거나 매우 약한 의미의 공동체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넘어 오프라인 커뮤니티까지 고려한다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공동체적 관점에서 우려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환영할만한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에치오니 교수는 그점에서 온라인 커뮤니티든 소셜 미디어든 환영하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 미디어의 융성은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이 갈파한 것처럼 인간이 대화(dialogue)적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공동체에서 대화는 대단히 중요하다. 대화없 이 공통의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대화가 없는 공동체는 전제주의나 전체주의로 전락한다.
그러나 대화가 공동체에 갇힐 필요는 없다. 공동체의 대화는 흔히 공적 대화(public dialogue)이다. 하 지만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공적인 대화 뿐 아니라 사적인 대화도 필요하다. 아니 사적인 대화가 더 필요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몇몇 가까운 사람들과의 친밀하고 즐거운 대화 말이다.
그리고 친밀한 대화 말고 유용한 대화도 필요하다. 세상돌아가는 소식, 직업적인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대화도 필요하다. 그것은 대화라기보다 다소 일방적인 방송의 모습일 수 있다. 소셜미디어는 온라인 커뮤니티보다 그러한 대화를 지구적 규모로 가능하게 해준다.
지금까지 인간을 괴롭힌 것은 독백이거나 대화의 부재였다.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인류사회에 어느 시대보다도 풍부한 대화와 정보와 지식의 공유를 가능하게 해준다면 우리는 소셜 미디어 열풍을 환영해야 할 것이다. 그 뒤에 상업적 의도도 있고 때로 그것을 테러를 모의하고 극단주의적 신념을 전파하는데 사용되기도 하겠지만, 소셜미디어가 공동체를 약화시킨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한다. (정보사회 읽어내기 블로그에서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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