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와 공감의 문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요?: Jeremy Rifkin의 해석

저는 지난 열흘쯤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The Empathic Civilization)라는 책을 끼고 다녔습니다. 두께가 840여 쪽이나 되는데 무협지처럼 쾌속으로 읽을 수도 없어 시간을 많이 보냈네요. 올 여름 책 읽기의 피크를 장식할 것 같습니다.

정보사회학 페이지에 노트를 올린 지가 한참 되어 스트레스 게이지가 좀 올라가는데도 기어코 그 책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책의 너무 많은 부분에 공감이 갔답니다.

지난 일년 동안 페이스북에서 일어나는 사회관계를 분석하면서 저는 두 가지 키워드를 찾았습니다. ‘선물(gift)’과 ‘공감(empathy)’! 그 동안 선물에 관해서는 이곳에서 여러 번 논의했는데, 공감에 관해서는 별로 얘기를 나눈 적이 없군요. 선물경제(gift economy)를 말씀 드리면서 부수적으로 언급한 정도였지요. 오늘 대화는 공감이 주제입니다.

페이스북을 잘 사용하기가 저한테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니 저와 동일한 이유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페이스북 사용을 부담스러워 하더군요. 바로 공감의 문제입니다. 페이스북은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입니다. 그러나 공감 능력의 결핍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중대한 문제입니다.

지난 두 학기 동안 학생들과 페이스북 친구가 되고, 페이스북을 이용한 수업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저보다 훨씬 공감을 잘 한다는 사실입니다. 얼친이나 학우가 올린 포스팅을 보면서 학생들은 무척 잘 반응합니다. 학생들은 다른 사람의 기쁜 일, 슬픈 일, 화나는 일, 아니면 그냥 시시한 일에 대해서 조차도 잘 공감합니다. 저는 그 점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제 얼친들 중 3-40대인데도 풍부한 공감능력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대체로 그분들은 비록 통상적인 의미의 사회적 명사는 아니지만 페이스북에서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합니다.

돌이켜보니 지난 1년 반 동안 페이스북 덕분에 저도 공감 능력이 좀 늘었습니다. 제 포스팅에 열심히 반응해주신 분들에게 감동해서 저의 무딘 마음이 바뀐 모양입니다. 물론 얼친들의 포스팅에 충분히 반응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요즘 제게는 공감 능력을 올리는 것이 큰 숙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느끼고 있던 차에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공감의 시대를 마주쳤어요. 단숨에 서문을 읽고 나니 제 마음을 들킨 것 같았습니다. 오랜 전 노동의 종말을 읽으면서 이 책을 엔트로피를 쓴 바로 저자가 썼단 말인가 하고 신기해 했었는데, 공감의 시대를 보면서 다시 한번 저자의 탁월한 혜안에 놀랐어요. 그 책을 읽다 보니 제가 왜 공감능력이 부족한지도 이해되더군요.^^

그 책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아가 형성되고 자아를 실현하는 존재이다.

2) 타인과 관계를 맺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방법은 공감(empathy)이다.

3) 사회적 차원에서 공감의 확장은 엔트로피 증가를 수반한다.

4) 원시사회에서 가족과 씨족(혹은 기껏해야 부족)을 넘어서지 못했던 공감의 범위가 고대, 중세, 근대, 그리고 오늘날로 넘어오면서 지구 행성 전체에까지 확대되어 왔다.

5) 하지만 공감의 확대는 엔트로피의 증가 위에서 가능했다. 오늘날 생활권의 전지구적 확대는 화석에너지의 엄청난 사용에 의해 가능해졌고 그로 인한 엔트로피의 증가는 지구상 모든 생물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6) 게다가 과학의 발달과 국가간 갈등의 증가는 생물권(biosphere)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핵이나 생화학 같은 대량살상무기의 출현을 초래하였다.

7) 전지구적으로 확대된 공감을 바탕으로 교육을 통해 생물권 의식을 고양하고, 민족국가를 뛰어넘는 ‘생물권 정치(biosphere politics)’를 구동시켜, 분산적인 재생가능 에너지 사용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지구 행성을 구하는데 나서야 한다.

한 마디로 ‘공감-엔트로피 역설(empathy/entropy paradox)’을 풀어야 한다, 즉, 공감의 강화를 통해 엔트로피의 증가를 둔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사실 그 책에는 공감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상세한 심리학적 분석도 있고, 공감의 확장에 관한 좀 장황한 인류사적 논의도 있으며, ‘공감적 과학’과 공감능력 교육에 대한 긴 설명도 담겨 있습니다. ‘공감’이 지닌 지구적 중요성의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대부분 필요한 논의입니다. 하지만 리프킨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그와 같이 비교적 간단합니다.

리프킨은 네트워크 사회에서 자라난 소위 밀레니엄 세대는 이전 세대에 비해 훨씬 뛰어난 공감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봐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는 교육을 통해 공감능력을 생물권 의식으로까지 부지런히 발전시켜야 인류가 엔트로피 문제 해결에 너무 늦지 않게 나설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제가 SNS을 이용하면서 배운 ‘공감’이 단지 친구관계의 유지 수단을 넘어 전지구적 생존을 위한 문화적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책에서 소개된 캐나다와 미국의 공감 교육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공감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모두가 모두에게 ‘적’이 되는 경쟁의 문화를 넘어서 ‘공감과 협력’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네요. 그러한 노력에 소셜 미디어와 SNS가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책이 너무 두꺼워 권하기 쉽지 않지만 그 책이 전달하려는 핵심적인 내용만은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한 3백 쪽이면 충분할 내용 같은데…SNS와 공감의 문화, 혹은 공감에 관한 리프킨의 주장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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